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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VOL.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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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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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동차 역사 下(시련을 이겨낸 한국 자동차산업의 기적)

자동차 국산화를 이룬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1990년대 이후 해외 시장 개척과 현지 공장 건설에 적극 나서 본격적인 국제화 시대를 맞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극심한 성장통도 있었다.

현대차가 1986년 1월 미국 시장에 본격적인 수출을 시작한 이후, 캐나다 퀘벡 주 부르몽 지역에 공장을 건설한 건 1989년이었다. 하지만 한국차의 첫 해외공장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이 공장에서 생산한 쏘나타Ⅱ는 북미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 품질 결함과 이에 따른 판매부진으로 부르몽 공장은 4년 만에 철수하게 된다.

90년대 초는 역동의 시절이었다.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은 본격적인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다. 90년 자동차 보급대수 300만대를 넘긴 한국은 93년에 600만대를 넘긴다. 불과 3년 만에 두 배에 이른 것.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힘입어 자동차는 내수시장에서 크게 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설 수 있었다.

내수시장이 크게 확대되면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본격적인 확장에 나선다. 기아차는 1990년 아산공장을 준공했고, 현대차는 1991년에 엔진과 변속기 자체 개발에 성공해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나간다. 대우자동차는 92년 말에 GM과의 합작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선다. GM의 철수로 대우는 해외시장 개척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쌍용차는 벤츠와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 벤츠와 91년 소형 상용차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했고, 92년에는 전 차종 기술제휴, 그리고 5% 자본 참여를 이끌어낸다. 95년에는 현대차가 전주공장을 완공한다.

자동차 국산화를 이룬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1990년대 이후 해외 시장 개척과 현지 공장 건설에 적극 나서 본격적인 국제화 시대를 맞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극심한 성장통도 있었다.

현대차가 1986년 1월 미국 시장에 본격적인 수출을 시작한 이후, 캐나다 퀘벡 주 부르몽 지역에 공장을 건설한 건 1989년이었다. 하지만 한국차의 첫 해외공장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이 공장에서 생산한 쏘나타Ⅱ는 북미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 품질 결함과 이에 따른 판매부진으로 부르몽 공장은 4년 만에 철수하게 된다.

90년대 초는 역동의 시절이었다.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은 본격적인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다. 90년 자동차 보급대수 300만대를 넘긴 한국은 93년에 600만대를 넘긴다. 불과 3년 만에 두 배에 이른 것.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힘입어 자동차는 내수시장에서 크게 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설 수 있었다.

내수시장이 크게 확대되면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본격적인 확장에 나선다. 기아차는 1990년 아산공장을 준공했고, 현대차는 1991년에 엔진과 변속기 자체 개발에 성공해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나간다. 대우자동차는 92년 말에 GM과의 합작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선다.

GM의 철수로 대우는 해외시장 개척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쌍용차는 벤츠와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 벤츠와 91년 소형 상용차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했고, 92년에는 전 차종 기술제휴, 그리고 5% 자본 참여를 이끌어낸다. 95년에는 현대차가 전주공장을 완공한다.

이 시기에 삼성자동차가 새로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다. 92년 6월 삼성중공업이 닛산 디젤과 기술제휴로 대형 상용차 사업을 시작했고 95년에 삼성자동차 법인이 출범한다. 삼성은 98년 4월 중형 세단 SM5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자동차 사업에 나선다.

순조롭게 성장하던 자동차산업은 97년 7월 기아차 부도로 파국을 맞는다. 공교롭게 자동차 보급대수 1,000만대를 돌파하는 시점이었다. 기아차 부도로 촉발된 한국의 금융위기는 그해 11월 21일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고 12월 3일 이를 공식 발표한다. IMF 관리체제가 시작된 것. 정부는 강력한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된다.

자동차 분야에선 현대차와 현대정공을 제외한 모든 메이커들이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기아차와 대우차, 대우중공업 국민차부문, 쌍용차, 삼성차, 삼성쌍용차 등이다. 기아차는 매각 수순을 밟았다. 제1차 입찰에는 현대, 삼성, 대우와 미국 포드가 참여했지만 유찰되고 인수를 포기한 포드를 제외하고 진행된 2차 입찰 역시 유찰, 3차 입찰에서 현대가 기아차를 인수하기로 결정된다.

정부가 추진한 기업간 빅딜은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전자는 삼성이, 자동차는 대우가 가져가기로 두 그룹간 논의가 진행되지만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빅딜은 무산되고 만다. 삼성차는 결국 르노로 매각돼 2000년 9월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한다.

대우자동차는 우여곡절을 거쳐 GM을 새 주인을 맞아 2002년 10월 17일 GM대우 오토 & 테크놀러지가 공식 출범했다. 쌍용차는 2004년 10월 상하이자동차그룹(SAG : Shanghai Automotive Group Co., Ltd)이 인수한다. 이로써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IMF 이후 완전히 재편되기에 이른다. 98년부터 시작된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이 2004년의 쌍용자동차 매각을 끝으로 마무리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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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사가 경쟁하던 체제에서 대우버스와 대우상용차 등 전문 업체를 제외하면 5개사로 크게 줄어들었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GM대우, 르노삼성, 쌍용차 등은 모두 해외 메이커로 경영권이 넘어간 것도 주요 특징이다. IMF 금융위기로 내수시장은 크게 위축된다. 97년 151만대였던 내수 시장 규모는 98년 78만대로 반 토막이 난다. 이후 점차 회복한 뒤 2002년에야 이전 수준을 되찾는다.

다른 한편에선 수입차의 공세가 시작된다. 88년부터 자동차시장을 개방한 정부는 95년에는 개방 폭을 크게 넓혔다. 해외 메이커들은 한국 지사를 앞 다퉈 설립하며 직판 체제를 구축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시장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88년 263대로 시작한 수입차 판매는 96년 1만대를 넘긴다. IMF 사태를 거치며 98년엔 2,075대로 떨어지며 잠시 주춤했지만 2005년 3만대를 돌파하고 2011년엔 10만대를 거뜬히 넘긴다.

금융위기를 거쳐 구조조정이 완료된 이후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재도약에 나선다. 97년에 1,000만대를 돌파한 우리나라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2004년에 1,493만 대를 나타냈고, 그 중 승용차 보유대수는 2002년에 인구 1천 명당 200대를 넘어서면서 2003년에는 1,000만대를 돌파했다.

수출은 꾸준히 늘었다. 외환위기 원화가치가 급락했고, 품질이 크게 개선된 데 힘입은 결과다. 자동차 수출은 96년에 100만대 선을 돌파한 지 3년 만인 99년에 150만대를 돌파한 데 이어 2004년 238만대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200만대 선을 넘었다. 89년 이후 부진했던 대미수출도 2000년대 들어 빠르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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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에는 현대차를 제치고 대우가 최대 수출실적을 올렸다.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전략이 주효했던 것. 그해 대우는 대우중공업의 실적을 포함해 전체 자동차 수출 물량의 42.8% 차지했다. 98년 한 해를 빼면 한국차의 수출을 주도했던 건 늘 현대차였다.

2001년엔 한국차의 미국 시장 판매가 60만대를 넘는다. 86년에 미국 수출을 시작한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2000년, 한국은 자동차 생산 300만대 시대를 열었다. 내수 143만대, 수출 167만6,000대를 기록하며 311만5,000대의 생산실적을 보인 것.

해외 현지공장 건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90년대 후반 대우차는 적극적으로 해외공장 건설에 나선다. 우즈베키스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지에 현지 공장을 세워 세계 경영을 실현해 나갔다. 현대차는 97년 생산을 시작한 터키 공장을 비롯해 인도, 중국, 미국, 러시아, 체코, 브라질 등지에 잇따라 해외 공장을 확보해왔다. 기아차는 슬로바키아, 미국, 중국, 멕시코에 해외 공장을 확보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에서 드럼통을 펴서 차를 만들던 한국은 이제 세계 5위의 자동차 대국으로 우뚝 섰다. 연간 생산량 기준으로 한국은 중국, 미국, 일본, 독일의 뒤를 이어 다섯 번째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불과 60년 남짓한 시간에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일궈낸 기적과도 같은 성적표다. 오늘이 있기까지 힘을 보태고 땀을 흘린, 한국의 모든 자동차인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오종훈
오토 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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