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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VOL.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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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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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스토리 02
자동차와 시계의 이인삼각(二人三脚)

자동차와 시계는 뗄 수 없는 존재다. 둘 다 수많은 기계 부품이 정밀하게 조합된다. 각 부품이 맞물리며 ‘움직인다’. 현대 기계 공학의 상징물로 봐도 손색없다. 게다가 둘 다 대중과 가까이 있다. 고가라는 벽이 있지만, 우린 자동차와 시계를 보고 느끼고 탐한다. 둘 다 소유욕을 자극하며 개성 담는 상징물로 우리를 자극한다. 자동차와 시계를, 특히 남자가 눈동자를 일렁이며 바라보는 이유다.

자동차와 시계가 지닌 의미를 떠나 둘은 실제로 함께한 세월이 길다. 한 세기 전에는 자동차 계기반을 시계 브랜드가 만들기도 했다. 코치빌더가 자동차 외장을 빚던 시절 얘기다. 지금도 명성이 자자한 예거 르쿨트르는 고급차 계기반을 만들기도 했다. 초기 애스턴 마틴의 계기반과 게이지가 예거 르쿨트르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 인연은 시간이 흘러 다시 연결되기도 했다. 2004년 애스턴 마틴은 예거 르쿨트르와 파트너십을 맺고 앰복스1(AMVOX1) 시계를 내놨다. 그 이후 12년 동안 협업하며 앰복스(AMVOX) 시계 라인업을 발표했다. 이렇게 애초 자동차와 시계는 인연이 깊다.

자동차와 시계의 연결고리는 자동차경주를 통해 끈끈해졌다. 시간을 정확히 재야 할 필요성이 생겼으니까. 정확한 시계가 필요했다. 즉, 시계 브랜드는 자기 기술력을 뽐낼 기회였다. 자동차와 시계 브랜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태그호이어가 되기 전 호이어는 다양한 자동차경주 팀에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시계(스톱워치)를 제공하며 명성을 쌓았다. 자동차경주에 시계 브랜드가 후원하는 행보의 시작이랄까. 그 관계가 이어져 자동차경주의 아이콘 같은 시계 모나코가 탄생했다. 스티브 맥퀸의 영향력이 컸지만, 자동차경주와 끈끈한 호이어의 배경도 중요했다.

롤렉스는 1960년대부터 미국 데이토나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 롤렉스는 내구 레이스의 공식 후원사다. 경주 이름에 롤렉스가 붙는다. 롤렉스는 데이토나란 명칭을 그대로 붙인 시계 라인업도 선보인다. 우승자에게 트로피와 롤렉스시계도 건넨다.

호이어와 롤렉스 외에도 자동차경주를 후원하는 시계 브랜드는 많다. 블랑팡은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레이싱 시리즈를 후원하고 쇼파드는 클래식카 경주 밀레 밀리아와 함께한다. 자동차경주와 시계 브랜드의 공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계측하기 위해서 시계 브랜드가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 경주용 자동차의 성능은 기계식 크로노그래프로 계측할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디지털 무선 전송 방식으로 바뀐 계측법과 기계식 시계의 정밀도는 종류가 다르다. 그럼에도 시계 브랜드는 자동차경주와 함께한다. 역사를 바탕으로 상징성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다.

상징성은 자동차든 시계든 유용하다. 기술 양상이 달라졌어도, 아니 달라졌기에 더욱 전통적 상징성이 도드라진다. 자동차는 시계의 정밀도를, 시계는 자동차의 역동성을 서로 품는다.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았다. 그 사이, 둘의 상징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또한 둘의 공통분모가 명확해졌다. 기계 공학의 정수를 바탕으로 한 고가품.

자동차와 시계 브랜드가 협업한 경우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두 ‘럭셔리 브랜드’다. 둘 다 편의와 효율보다는 최고를 지향한다. 특히 기계식 시계는 이제 필요에서 감상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에서 귀금속이나 예술품의 지위로 격상했다.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또한 그 방향성을 지향한다. 필요를 넘어 가치에 집중하는 것, 둘의 지향점이 맞기에 둘은 협업을 계속했다.

자동차경주에서 인연 쌓은 둘의 관계는 자동차 브랜드 협업 시계로도 나타났다. 이렇게 탄생한 시계는 스토리를 만든다. 단순히 이름만 붙인 수준이 아니다. 둘의 요소를 섞어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둘의 이미지를 잘 조합한 작품이자 고객의 마음을 건드릴 상품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급 자동차에 어울리는 시계를 찾는 수고를 덜어준다. 아예 자동차 브랜드의 짝으로 나온 시계니까. 에디션의 존재 이유다.

최근 협업으로는 재규어랜드로버가 눈에 띈다. 우선 재규어는 클래식 라이트웨이 E-타입을 만들며 브레몽(Bremont)과 협업했다. 이야기도 그럴싸하다. 재규어는 발견한 6대의 경량 섀시를 사용해 나머지 E-타입을 만들었다. 브레몽 스페셜 에디션 시계도 딱 6개만 한정 생산된다. 시계에는 자동차와 일치하는 일련번호를 새기고, 측면은 타이어 트레드 패턴으로 디자인했다. E-타입에 쓴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니 의미와 가치 모두 얻었다. 진귀하고 의미 있는 자동차와 시계가 탄생한 것이다.

랜드로버는 제니스와 손잡았다. 랜드로버는 2016년 파리모터쇼에서 레인지로버 SV 오토바이오그라피 이나믹 모델을 발표했다. 이에 맞춰 제니스는 엘 프리메로 레인지로버 에디션을 발표했다. 새로운 자동차와 시계가 짝을 이뤘다. 또 레인지로버 벨라를 출시할 때도 이 협업은 이어졌다. 벨라 출시에 맞춰 제니스가 크로노마스터 엘 프리메로 레인지로버 벨라 에디션을 선보였다. 뒷면에는 레인지로버와 벨라 각인을 새겼다. 벨라 코드명이 나온 시기도 1969년, 제니스의 대표 무브먼트인 엘 프리메로를 만든 시기도 1969년이었다.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자동차 에디션이 아닌 아예 브랜드 시계가 자동차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 대시보드에 박힌 아날로그 시계는 고급차의 상징처럼 남았다. 쿼츠 시계가 나온 이후로 자동차 대시보드에 시계를 넣는 건 사실 무의미해졌으니까. 시계가 귀하던 시절, 자동차의 가치를 높이는 장치였지만 이제는 편의보다는 장식의 개념이다. 장식이라는 단계로 왔으니 장식 고수인 정통 기계식 시계 브랜드의 로고가 빛을 발한다.

메르세데스-AMG와 IWC 샤프하우젠 관계가 대표적이다. 두 브랜드는 2004년부터 함께 해왔다. 메르세데스-AMG의 일부 모델에 IWC 샤프하우젠 아날로그 시계가 실내를 장식한다. 이젠 IWC 아날로그 시계가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아날로그 시계를 장식한 자동차는 많지만 시계 브랜드 로고까지 박힌 시계는 드물다. 차별점이자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물론 IWC 시계에 혹해서 AMG를 구입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AMG를 샀을 때 다른 모델보다 흐뭇해질 요소로는 충분하다.

자동차가 품은 아날로그 시계의 정점으로 벤틀리와 브라이틀링을 꼽을 수 있다. 두 브랜드는 2003년부터 함께 했다. 브라이틀링은 벤틀리 컨티넨탈 모델의 대시보드를 개발할 때도 관여했을 만큼 보다 밀접하게 협업한다. 그 이후로 벤틀리 모든 차량에 브라이틀링 시계가 들어간다. 뮬리너 옵션으로 한층 호사스러운 브라이틀링 시계를 넣을 수 있는 점도 차별점이다. 더불어 브라이틀링에서 ‘브라이틀링 포 벤틀리’ 컬렉션 시계도 출시해 자동차 안팎에서 함께 해왔다.

꼭 시계 브랜드와 협업하지 않아도 자동차가 아날로그 시계를 품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 대시보드에 시계 달고 다니던 시절의 고급스러움을 자동차에 입히려는 의도다. 최근 제네시스 G80, EQ900과 현대 그랜저에도 아날로그 시계가 한자리를 차지한다. 시계의 위치를 보면 장식의 개념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고급 자동차라는 하나의 증표로서 활용된다. 한 세기 전 자동차에 시계가 들어온 것처럼. 그렇게 자동차와 시계의 이인삼각은 여전히 이어진다.

김종훈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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