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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VOL.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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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자동차와 여행 – 여행을 통해 배우다

필자는 오래 공자님을 흠모해 왔다. [논어]를 읽고 감동했고 영화와 드라마로 공자를 만났다. 스스로를 공자주의자라 떠들었고 공자에 대한 어설픈 책도 썼다.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 곡부에 꼭 한 번 다녀오리라… 몇 년째 꿈만 꾸고 있었다. 11월에 드디어 중국 곡부에 다녀왔다. 누군가 이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나는 이렇게 답하련다. “성지 순례.”

제남 공항에 내려 자동차를 타고 곡부로 향했다. 가다 보니 이정표에는 “제노(齊魯) 도로”라고 쓰여 있다. 가이드에게 물었다.

“저건…혹시 제나라와 노나라에서 따온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여기가 제나라와 노나라를 잇는 길이었지요.”

아, 제남-곡부가는 길에서 2,500전 춘추시대의 나라 이름이 불쑥 튀어나올 줄이야. 나는 흥분했다. 그 옛날 이곳은 제나라와 노나라 땅이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과 포숙아가 살았던 곳이고 제환공이 천하를 호령했던 곳이며 무엇보다 공자가 나고 자라고 묻힌 곳이다.

두 시간을 달려 곡부에 도착하니 벌써 늦은 오후였다. 다음 날 아침, 곡부 시내에 자리 잡은 공묘를 방문했다. 공묘는 공자를 기리는 사당이다. 입구에서 1km쯤 걸어 들어가야 사당이 나온다. 사당까지 가는 길에는 청나라 때부터 송나라 때까지 황제들이 세운 기념문이 즐비하다. 사당 가는 길에 행단(杏壇)이 있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살구나무 단 위에 공자가 앉아 있었으리라. 제자들은 그 아래 무릎을 꿇고 있었으리라. 공자가 은은히 거문고를 켜면 수제자 자공이 물었으리라.

“선생님!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너는 그릇이다.”
“네? (공자님은 바로 며칠 전에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고 했다. 자공은 급 실망한다) 그럼…어떤 그릇입니까?”
(공자는 뜸을 들인다. 자공이 안절부절 못하는걸하는 걸 곁눈질한다)
“제사 때 쓰는 귀한 그릇이다.”
“!”

자공과 공자는 서로를 보며 웃는다.

공자의 사당 앞에는 향을 올리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다. 아주머니 한 사람에게 물었다. 무얼 기원 하느냐고.

“우리 아들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딜 가나 어머니들이 바라는 건 비슷한가 보다. 나 역시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아들 녀석이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나 또한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내 코가 석자다. 공묘에서 나와 곡부 시내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이 있는 거리의 이름은 “예禮”다. 그 옆의 거리는 인仁, 의義, 효孝…. 아, 이 사람들은 아직도 공자의 가르침으로 살고 있구나. 논어의 개념이 수 천 년의 역사를 꿰뚫고 현재에 살아 있구나.

식사 후에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공림孔林으로 갔다. 수만 평의 대지 위에 공자를 비롯해 그 후손들의 무덤 10만여 기가 있다. 기독교도가 골고다 언덕을, 불교도가 쿠시나가르(석가모니가 입적한 곳)를 찾듯 나는 공림으로 걸어 들어갔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아들 백어伯魚의 무덤을 지나 공자님 묘소 앞에 섰다. 묘소 옆에는 자공이 머물며 시묘살이를 했던 작은 돌집이 있다. 공자가 세상을 뜨자 제자들은 3년상을 치르고 뿔뿔이 흩어졌다. 자공은 스승을 잊지 못해 3년을 더 머물렀다. 홀로 밥을 해 먹고 아침저녁으로 스승에게 제삿밥을 올리면서 스승이 남긴 죽간을 읽었다.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다. 그 고통을 안고 자공은 6년을 견뎠다. 자공 생각에 숙연해졌다. 아마도 그는 선생이 살아있었던 때를 추억하지 않았을까? 자공은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너는 그릇이다.”
“네? (공자님은 바로 며칠 전에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고 했다. 자공은 급 실망한다) 그럼…어떤 그릇입니까?”
(공자는 뜸을 들인다. 자공이 안절부절 못하는걸하는 걸 곁눈질한다)
“제사 때 쓰는 귀한 그릇이다.”
“!”

자공과 공자는 서로를 보며 웃는다.

공자의 사당 앞에는 향을 올리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다. 아주머니 한 사람에게 물었다. 무얼 기원 하느냐고.

“우리 아들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딜 가나 어머니들이 바라는 건 비슷한가 보다. 나 역시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아들 녀석이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나 또한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내 코가 석자다. 공묘에서 나와 곡부 시내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이 있는 거리의 이름은 “예(禮)”다. 그 옆의 거리는 인仁, 의(義), 효(孝)…. 아, 이 사람들은 아직도 공자의 가르침으로 살고 있구나. 논어의 개념이 수 천 년의 역사를 꿰뚫고 현재에 살아 있구나.

식사 후에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공림孔林으로 갔다. 수만 평의 대지 위에 공자를 비롯해 그 후손들의 무덤 10만여 기가 있다. 기독교도가 골고다 언덕을, 불교도가 쿠시나가르(석가모니가 입적한 곳)를 찾듯 나는 공림으로 걸어 들어갔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아들 백어伯魚의 무덤을 지나 공자님 묘소 앞에 섰다. 묘소 옆에는 자공이 머물며 시묘살이를 했던 작은 돌집이 있다.

공자가 세상을 뜨자 제자들은 3년상을 치르고 뿔뿔이 흩어졌다. 자공은 스승을 잊지 못해 3년을 더 머물렀다. 홀로 밥을 해 먹고 아침저녁으로 스승에게 제삿밥을 올리면서 스승이 남긴 죽간을 읽었다.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다. 그 고통을 안고 자공은 6년을 견뎠다. 자공 생각에 숙연해졌다. 아마도 그는 선생이 살아있었던 때를 추억하지 않았을까? 자공은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가난해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자여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괜찮다. 하지만 가난해도 생을 즐기고 부자여도 예를 좋아하는 것이 더 좋지.”
“아…[시경]에 ‘끊고 닦고 쪼고 간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거로군요.”
“야, 자공아! 이제야 너와 더불어 시경을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자공은 “이 정도면 90점이지요?”라고 생각하며 말했는데 선생은 “95점으로 살면 더 낫지 않겠니?”라고 답한다. 자공은 깨닫는다. “절차탁마(切磋琢磨)! 이게 조각할 때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인간성을 함영하는 데 필요한 말이군요!” 스승은 맞장구를 친다. “그렇지! 에구, 똑똑한 내 제자!” 그때 자공은 패기에 찬 젊은이였고 공자는 야망이 살아있는 중년이었다. 자공이 “아!”하면 공자는 “어!”했다. 둘은 죽이 잘 맞았다. 흔히 공자 3대 제자로 안회, 자로, 자공을 꼽는다. 자로는 순수하되 머리가 모자랐고 안회는 공자의 페르소나여서 질문이 없었다. 오직 자공만이 공자와 수준 높은 담론을 나눌 수 있었기에 2,500년의 역사를 관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다.

공림에 가면 자공이 공자를 기리며 기념 식수를 해 놓은 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공은 부자였다. 충분히 종을 부릴 수 있었다. 자공은 이 나무를 직접 심었을까? 귀찮다고 남한테 시켰을까? 궁금했다. 자공이 물었다.

“평생을 간직하고 지켜야 할 말씀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네가 하기 싫은 일을 남한테 시키지 마라.”

걷다 보니 공림 한구석에 비석이 있다. “자공수식해 (子貢手植楷) –자공이 손수 해나무를 심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선생님! 가난해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자여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괜찮다. 하지만 가난해도 생을 즐기고 부자여도 예를 좋아하는 것이 더 좋지.”
“아…[시경]에 ‘끊고 닦고 쪼고 간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거로군요.”
“야, 자공아! 이제야 너와 더불어 시경을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자공은 “이 정도면 90점이지요?”라고 생각하며 말했는데 선생은 “95점으로 살면 더 낫지 않겠니?”라고 답한다. 자공은 깨닫는다. “절차탁마(切磋琢磨)! 이게 조각할 때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인간성을 함영하는 데 필요한 말이군요!” 스승은 맞장구를 친다. “그렇지! 에구, 똑똑한 내 제자!” 그때 자공은 패기에 찬 젊은이였고 공자는 야망이 살아있는 중년이었다. 자공이 “아!”하면 공자는 “어!”했다.

둘은 죽이 잘 맞았다. 흔히 공자 3대 제자로 안회, 자로, 자공을 꼽는다. 자로는 순수하되 머리가 모자랐고 안회는 공자의 페르소나여서 질문이 없었다. 오직 자공만이 공자와 수준 높은 담론을 나눌 수 있었기에 2,500년의 역사를 관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다.

공림에 가면 자공이 공자를 기리며 기념 식수를 해 놓은 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공은 부자였다. 충분히 종을 부릴 수 있었다. 자공은 이 나무를 직접 심었을까? 귀찮다고 남한테 시켰을까? 궁금했다. 자공이 물었다.

“평생을 간직하고 지켜야 할 말씀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네가 하기 싫은 일을 남한테 시키지 마라.”

걷다 보니 공림 한구석에 비석이 있다. “자공수식해 (子貢手植楷) –자공이 손수 해나무를 심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명로진
작가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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