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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VOL.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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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노사협력
해외 자동차산업에서 배우는 상생협력

노조가 먼저 양보한 스페인 르노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공장에 대한 생산성 지표인 '2016년 하버 리포트' 결과를 받아든 프랑스 르노 본사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폐쇄를 검토했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이 전 세계 148개 공장 가운데 생산성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회사 위기 상황에서 노조가 한 발 양보해 일자리를 지키려한 노력이 생산성 향상이라는 극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 2009년만 해도 바야돌리드 공장 폐쇄는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르노는 인건비가 비싼 스페인을 떠나 루마니아와 터키 등에 추가로 생산시설을 짓는 방안을 검토했다. 회사가 공장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고민을 하자 노조는 고용과 임금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으로 응수했다. 근로자 가족과 지역주민 1만6000여 명도 여기에 동참했다.

팽팽한 대치상황을 먼저 깬 것은 노조였다. 고임금으로 이미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더 이상의 무리한 요구는 스스로 일자리를 걷어차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노조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스스로 임금동결과 초과근무수당을 양보하는 것에 합의했다. 또 주문이 밀리면 평일 급여를 받고 주말에도 일하고, 필요한 경우 40km 떨어진 인근공장에 전환 배치하는 것에도 합의했다. 2013년에는 스페인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의 50%까지만 임금인상이 가능하도록 노사가 합의했다. 예를 들어 스페인 GDP 성장률이 3%인 경우 임금인상률은 최대 1.5%가 되는 것이다.

일자리를 선택한 노조의 결정은 옳았다.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인건비 부담이 줄자 르노가 바야돌리드 공장에 대한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르노가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소형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인 캡처(한국명 QM3)와 2인승 전기차 트위지 등의 생산을 이곳에 배정하면서 공장은 활기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2012년까지 1교대를 겨우 유지했던 공장은 다시 2교대로 바뀌었고, 2012년 28만6000대까지 줄었던 연간 생산량은 지난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바야돌리드 공장의 회생에는 스페인 정부의 노동부문 개혁도 한 몫 했다. 스페인은 2010년부터 정규직 과보호를 해소하고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전년 대비 3개 분기 연속 매출이 줄어들 때 정규직을 해고할 수 있게 하고, 경영이 어려운 기업은 노조와 협 의 없이 임금삭감과 근로시간 변경 등을 허용해주는 개혁안이 모두 이때 도입됐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하고 노조도 회사측에 적극 호응하면서 르노를 비롯해 포드, 폭스바겐, 세아트 등은 스페인 공장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고용 위해 모두 희생하는 일본 토요타

노조가 강경하기로 유명한 미국 GM도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노사간 협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임금 축소와 탄력적인 고용에 대해 노조가 동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GM은 2011년부터 4년간 기본급을 동결했으며, 2007년에는 이중임금제를 채택하기도 했다. 신규 근로자를 채용할 때 기존 근로자의 50% 수준만 임금을 지급하면서 일자리 늘리기 정책을 노·사가 함께 한 것이다. 노조의 양보를 통한 경쟁력 회복으로 GM은 2009년 119만 대에 불과한 미국 내 생산대수를 2015년에는 두 배에 가까운 214만 대까지 회복시켰다. 생산량 증가는 자연스럽게 고용 증가와 함께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토요타 노조는 '고용 안정만 보장된다면 어떤 것도 희생할 각오가 있다'는 1962년 무파업 노사선언 이후 55년째 파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회사의 경쟁력을 우선하고 '토요타'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고 있다. 물론 토요타 노조도 1950년 심각한 경영위기 때 대규모의 노동쟁의를 벌였고 당시 사측에서도 전체 종업원의 10%인 1500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빈번한 마찰이 있었지만 이후 노조는 심각한 대립은 노사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판단 하에 회사를 우선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투쟁적인 산별 노조에서 우선적으로 탈퇴하며 전일본자동차노동조합의 해체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토요타 노조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으로 인한 장기침체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인 2003년부터 4년간 자발적으로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배치전환을 수용했으며 회사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주는 임금인상 대신 실적이 좋은 경우 성과수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2014년 회계연도에 토요타는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했지만 노조는 회사측보다 임금 인상액을 낮게 잡아 업계를 놀라게 했다. 회사측은 월 3700엔(약 3만360원)을 제시한 반면 노조는 실제로 자신이 기여한 금액은 1000엔(약 1만120원)에 불과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결국 그 해 임금인상액은 월 4000엔(약 4만480원)으로 결정됐다. 당장의 임금인상보다는 회사의 장기적 경쟁력 향상을 위해 자신의 몫을 양보하는 노조의 결정에 업계는 충격을 받았다.

강성 노조와 사라진 호주 자동차 산업

지난해 10월, 90년의 자동차 제조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호주 사례는 우리 자동차 산업 노사가 배워야 할 반면교사다. 미국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일본 토요타 등 호주 내 3개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은 주요 요인으로 호주 달러 강세와 정부 보조금 축소 등이 거론되지만 여기에 강성노조도 한 몫 했다.

토요타의 경우 공장 폐쇄 결정 전에 인건비를 낮추는 내용 등을 담은 노동협약 개정안을 마련해 공장 직원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실시하려 했지만 실행조차 하지 못했다. 호주 연방 법원이 노동협약 개정은 공정근로법 위반이라며 투표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강성 노조의 강한 입김 때문에 노동협약 개정은 번번히 무산되기 일쑤였다. 2010년대 초반 토요타는 11%를 올려주겠다는 사측 제안에 노조가 12% 인상으로 맞서면서 장기간 파업을 벌여 막대한 손실을 입기도 했다.

한국과 동일하게 생산직 인력을 유연하게 전환배치하지 못하는 구조나 일단 결근한 뒤에 나중에 병가를 내는 등 근로자들의 낮은 윤리의식 등도 호주 내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됐다. 또 2007~2013년 집권한 노동당 정부가 강성 노조의 눈치를 보며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룬 것도 독약이 됐다. 호주는 산별 노조 체제로 전국 단위 조직이 있어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하다.

이승훈
매일경제 산업부 차장
TREND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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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움직임

GM의 해외 시장 구조조정 동향

TREND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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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노사협력

해외 자동차산업에서 배우는 상생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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