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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VOL.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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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03

STORY03

자동차 에세이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것

사춘기 시절부터 탈것들은 언제나 나의 로망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운동이라면 질색이던 성격에도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스노보드 같은 타는 놀이는 무척 좋아하거나 개중엔 수준급으로 즐기는 것도 있다. 운동기구처럼 현실적으로 그 시절 내가 가질 수 있던 것들과, 막연히 동경할 수밖에 없는 보트나 비행기 조종, 우주비행사 같은 비현실적인 것들의 경계에는 자동차가 있었다. 학생 때 용돈을 아껴 택시를 타고는 조수석에 앉아 기사님의 스티어링 휠 조작과 기어, 클러치 조작을 흉내내며 그것이 딱딱 맞아떨어질 때는 혼자 으쓱하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 다른 말로 자동차 마니아라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그가 능력이 닿는 한 비싸고 고급스러운 차, 고성능 차를 소유하고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오디오를 좋아하는 사람과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뉘앙스가 다르듯,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과 자동차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는 또 다른 느낌의 차이가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고급스럽고 고성능인 차가 주는 보편적 기쁨과 또 말초적인 운전의 느낌에서 오는 주관적 즐거움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프리미엄급 중형차에만 가도 만날 수 있는 과도한 실내장식의 화려함은 나에게 어색하다. 내가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며 좋아하는 공간인 내 책상과 연습실의 공간도 그렇게 화려하고 고급스럽지 못하다. 눈을 치켜뜨고 수 초 만에 100Km를 넘게 달리는 고성능 차들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2, 3년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은 신형 차들도 나에게는 그리 흥미를 주지 못한다. 되려 보완장치가 완벽하지 못하여 달구지 같은 차들이 운전의 기쁨을 주었고 소박하고 실용적인 내장재의 차들이 편안함을 주었다고 하면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처음 차를 소유하게 되었던 복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스무 대 남짓 차를 가져 보았다. 평생 단 한 대의 차를 가지셨던 아버지와 세 대의 차를 마르고 닳도록 운행하신 장인어른에 비하면 대수로는 어마하게 많은 것인데, 사실 대부분 중고차거나 누구에게 거저 얻다시피 한 차도 여러 대 있다. 이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차를 생각해보면 망설일 것 없이 군복무를 제대하고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뛰어 처음 마련한 하얀색 엘란트라다.

1500cc SOHC 엔진 차량이었고 수동기어 차였다. 이 차에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족족 BBS레이싱 휠과 광폭타이어, 스포츠 쇼크 옵소버를 달았고 수입산 선루프와 레이싱용 시트, 배기통까지 달아 방방거리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90마력짜리 차로 그러고 다녔다는 것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검소한 태생의 차에 그 차값만큼의 옵션을 뒤집어씌우고 다녔다는 것이 미련해 보이지만 그 시절 나에겐 그만한 기쁨이 없었다. 집보다 편안했고 운전을 할 때는 차 구석 끝까지 내 몸처럼 느껴졌다. 아무 것도 모르고 차를 구입해서는 자동차라는 것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다. 후에 1600cc DOHC 엔진 모델을 물어봤을 때 그거 필요 없다고 말렸던 영업사원이 몹시도 얄미웠다.

다이내믹한 DOHC 엔진에 대한 미련은 결국 나중에 중고 엘란트라를 구입해서 티뷰론 엔진을 얹고 다니는, 자동차 법에 어긋나는 일까지 하게 만들었다. 몸체가 가볍다보니 순간 가속에서는 실제 티뷰론도 따라잡을 수 있는 차가 되었다. 그만큼 엘란트라는 기본이 충실한 느낌의 차였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대신하여 받은 티코는 나에게 차의 또 다른 재미를 알려주었다. 주변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티코가 주는 운전의 즐거움에 완전 빠져들었다. 티코는 타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즐거움 그 자체였다. 한참 청춘이었으니 안락함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주행 시에 발끝부터 전해지는 지면의 느낌은 카트보다도 재미있었다. 하나가 좋으면 다른 것도 좋다고, 티코에 달린 트랜지스터 라디오 소리 같은 카 오디오까지 즐거웠다.

호기심에 인터넷 장터를 통해 50만 원에 구입한 88년식 6인승 코란도 롱바디는 뒷좌석이 좌우에 마주보고 앉는 형식이었다. 친구들이 그 차를 타면 죄수로 호송되는 느낌 같다고 질색을 하기도 했다. 내게 올 당시 이미 10년의 나이를 훌쩍 넘겼던 할아버지 코란도는 80Km를 넘기면 옆 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했고, 평지에서 100Km 이상 밟히지가 않았지만 빠르고 경쾌한 차들이 갖지 못한 진득한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이 차를 타면 못가는 데가 없겠구나 하는 믿음직스러움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 믿음이 근거는 없는 것이었다. 낡은 이 차는 겨울에 와이어식 주차 브레이크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소형차도 다 올라가던 낮은 눈길언덕에 혼자 미끄러지는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코란도가 주었던 믿음직한 느낌은 후에 나로 하여금 새 차로 갤로퍼를 계약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우리 다음 세대가 즐겨 이용할 차는 우리가 타온 차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지금처럼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박스에 올라타면 알아서 목적지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그런 과도한 편리함이 표준이 될 모양이다. 이전에 마차를 타던 시대의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재미와 기쁨이 있었을까? 우리세대가 공유한 자동차에 대한 기쁨은 우리 세대만이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조금 낡았어도 사람 손때 묻고 정성으로 손질된 차가 좋다.

박해성
국민대학교 종합예술대학원 플루트 교수 / 월드포크뮤직소사이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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