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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VOL.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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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02

STORY02

자동차문화
독일에서 본 변화하는 자동차 세상

독일 자동차문화, 소유의 개념에서 공유의 시대로

춥다. 문득 10여 년 전 TV속 광고 하나가 떠오른다. 도심의 어는 북적거리는 한 카페에서 두 남자가 만난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쪽 손을 번쩍 들며 동시에 다른 한 손은 앞으로 내밀면서 “쇼바!” “슈뢰더!” 하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걸 보면 오랜 만에 만나는 죽마고우인 듯하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자마자 쇼바가 슈뢰더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다. 그러자 슈뢰더는 잘 지내고 있다면서 생각 난 듯 양복 안주머니를 뒤지더니 사진 세 장을 꺼내 마치 화투장을 다루듯 차례대로 테이블에 내리치며 말한다.
“내 차! 내 집! 내 배!“
번듯한 차와 집과 배의 사진이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인다. 그리고는 두 남자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러나 이내 쇼바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그러더니, “내 차! 내 집! 내 배! 내 목욕탕! 내 수영장! 그리고 내 말!”
한층 더 거창하고 화려한 쇼바의 사진 6장이 슈뢰더의 사진들을 덮어버린다.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하던 슈뢰더는 더듬더듬 겨우 한 마디를 내뱉는다.
"너???, 학교 다닐 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쇼바는 마지막으로 명함 한 장을 테이블에 내리치며 말한다.
“내 투자자문회사!“
30초짜리 이 코믹 영상의 목적은 결국 특정 은행의 투자상담 서비스를 선전하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슈가 더 함축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 독일 전역에서 큰 화제가 되었었다. 그 중 하나가 자동차가 부의 상징이었던, 특히 남성들의 성공지표와도 같았던 시대의 풍자다.

01


오늘, 2018년 1월 1일, 독일, 베를린, 지난밤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불꽃놀이가 하늘을 하얗게 밝혔다. TV속 브란덴부르크 광장 앞은 그야말로 거대한 나이트클럽 같았다. 그 광란의 밤이 잠들자 이내 새해의 첫 해가 떠올랐다. 남편과 나는 새해의 첫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묻고 또 묻고 있다. 우린 왜 오늘 그 새해의 첫 산책을 나가기로 했을까? 왜 다른 길이 아닌 그 길을 걸었을까?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몇 마디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었다. 112 구급차에 실려 여기까지 왔다. 퉁명스런 여의사는 내 발목을 덥석 잡아 엑스레이에 이리저리 대보더니 “생각보다 많이 밀려나가진 않았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발목이 부러졌다는 말이다.
생전 처음 이상한 주사를 맞고 처음 둘러보는 축축한 깁스 끝으로 발가락만 내놓은 채, 처음 쥐어보는 목발에 기대어 방금 전 나는 병원문을 나왔다.
“얼른 가서 차 가지고 올게 여기 앉아서 기다려“라며 남편은 달려갔다.
우리는 자가용이 없다. 물론 우리 집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가용으로 아이들을 매일 학교로 실어 나르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자가용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자가용이 없다는 게 더 이상 차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유하지 말고 사용합시다“ 카셰어링의 캐치프레이즈다. 남편은 베를린에서 가장 큰 카셰어링 회사 두 군데를 이용하고 있다. 베를린에는 다수의 카셰어링 회사들이 있는데 저마다 요금체계가 달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이용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사처럼 긴 시간과 큰 차가 필요한 경우와, 단시간에 단거리를 이동하고자 하는 경우 이용하는 회사가 다르다. 현재 베를린에서 가장 큰 분 단위 요금제 회사인‘드라이브 나우’(Drive Now)와 ‘카2고’(Car2go)를 이용하면 언제든, 베를린 시내 어디에서든, 택시를 부를 일이 없다고 한다. 요금도 택시보다 저렴하고 사용방법도 간단하다. 앱으로 예약하고 회원카드로 문 열고 버튼을 눌러 출발하고 적당한 곳에 두면 된다.

02


쇼바와 슈뢰더 주연의 그 TV광고를 보며 낄낄 웃던 때에 비하면 오늘날 베를린 거리는 몰라보게 바뀌었다. 차가 막히는 일이 없던 도시에 점점 정체구간이 생기기 시작했고 요즘 동네 앞 큰 길에 서있자면 보통 자가용보다 카셰어링 회사 차들을 더 많이 본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문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전기차 보급률도 수직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차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아마 ‘자연보호’라는 말의 역사만큼은 길지 않을까? 자동차업계가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해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누릴 장점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업계와 정치권은 “자동차가 없는데 무슨 충전소, 충전소가 없는데 무슨 자동차”라며 서로 공방만 벌여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발전으로 충전시간이 단축되고 주행거리가 늘면서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독일의 시스템구축 경로가 거의 그렇듯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비단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가 증가할 것이라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에 앞서 정부는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또 그에 발맞춰 업계, 예를 들어 우체국이나 대규모 운송회사 같은 곳들이 솔선수범해 전기차를 도입할 것이다. 남편이 이용하는 ‘드라이브 나우’와 ‘카2고’에도 전기차들이 많다. 조용하고 웬만한 주행거리는 무리없이 달린다. 게다가 분 단위 가격도 디젤이나 가솔린차보다 훨씬 저렴하다.

아 춥다. 추운데 남편은 올 생각을 안 한다. 차가 멀리 있나 보다.
카셰어링이나 전기차와 더불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무인자동차다. 2018년에는 한층 더 발전된 지능형 순항제어시스템과 차선이탈방지시스템을 갖춘 무인 자동차시대로 성큼 다가설 것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다시 길이 막히지 않는 도시들이 생겨날까? 가만 있자. 이뿐만이 아니다. 나 같이 발목이 부러진 사람이 이렇게 덜덜 떨며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혼자 집에 갈 수 있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참 좋은 세상이겠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온다고 해도 ‘쇼바와 슈뢰더 시대’의 자동차 위엄과 낭만도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 저기 온다! 휴먼IQ를 장착한 내 하이브리드 무인자동차!”

이재인
재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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